며칠 전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회의원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 벌이고 있는 출근길 시위를 찾아가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공감하지 못한 점,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한 점, 정치권을 대신해서 사과드린다. 정말 죄송하다”라고 사과하였다.
그리고 그는 출근길 시위대를 향해 눈살을 찌푸린 시민들을 향해서도 “출근길 불편함, 상상만 해도 짜증나는 일이다. 정치권이 겪어야 할 불편을 여러분들이 겪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출근길 시민들은 안쓰럽고 이해한다는 반응부터 무고한 출근길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몰상식한 행위라며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큰 소리로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우리 모두 예기치 못한 이유로 누구나 다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장애인에 관한 복지가 약속대로 지켜지는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시설이 충분히 설치되고 있는지, 또 정기적인 시설보수나 정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그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평소 이러한 분야의 이슈는 김예지 의원이 이야기 한 것처럼 어떤 누군가가 큰 사고나 중상을 당해야 언론이 주목하고, 언론이 주목하면 정치권 및 비장애인들이 그제야 관심을 가지고 시정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년층,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해당 되는 듯하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이들을 찾아가 어려운 점이나 개선할 부분을 정책에 반영하겠으니 표를 부탁한다면서 사정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들은 대부분 예산편성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밀리게 되어 선거 전 약속했던 사항들은 모두 공수표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에 우리 국민 대부분은 선거 전 ‘공약(公約)’은 선거 후 ‘공약(空約)’이 되는 현실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경험하면서 ‘정치가 원래 그렇지’하며 이젠 더이상 정치에 기대나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2001년 겨울,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사고로 귀성길에 오른 장애인의 사망을 계기로 장애인들은 더 이상의 사고를 막기 위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다. 그런데 21년이 지난 현재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2.2%에 이르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지하철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다.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이용해 보면 경사 각도가 너무 가파르게 되어 있어 장애인 올림픽에 나갈 정도의 근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경사로가 대부분이다. 또 비장애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지나가기에 어려운 작은 턱이나 틈이 많아 다니는 데에도 불편하다.
아직도 4호선 명동, 1호선 청량리, 6호선 봉화산 등 21개 역은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열차 내려도 밖으로 나갈 방법 없다. 특히 명동역은 승강장에 내리면, 대합실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장애인들에게 명동역 대신 회현역이나 충무로역에 내릴 것을 권하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장애인들은 절대 명동에 약속장소를 잡지 말아야 한다.
2호선 신설동역에선 신설동행 열차만 탈 수 있고 성수행 열차를 탈 수 없다. 성수에서 신설동으로 도착한 방향 승강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대합실과 지상으로 나갈 수 있지만 성수행 방면엔 승강장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다 하더라도 한 방향 승강장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출발 혹은 도착만 가능한 반쪽짜리 역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에게 이동을 원하면 평소 상체 근육을 슈퍼맨 수준으로 키우던가 아니면 공중부양을 익히라는 모종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듯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대해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인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물론 그의 말도 어떤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정책당국에 정당한 방법으로 시위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련 없는 일반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했고 또 위험한 방식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부터 위로해주고 정치인으로서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말부터 한 연휴에 비판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한 정책이 아니니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는 마치 위안부나 강제징용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니 우리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없다는 일본 정치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이동이 가능해야 교육이 가능하고 교육이 가능해야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 일자리를 가져야 세금을 내고 국민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동은 국민이면 누구나 걱정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려야 되는 권리인 것이다. 시위의 방식이 ‘비문명적’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은 우선순위에 밀려 실행이 미뤄지지 않는지 우리 모두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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