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에서의 문학, 감상의 대상 아니다, 조건에 따라 분석해야 할 텍스트일 뿐

대학저널 / 2023-07-17 15:49:37
논술에서 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대부분 대학의 논술시험에서 문학은 단골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학작품의 높은 활용 빈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학생들은 논술에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문학을 꺼리는 이유는 크게 문학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와 문학 자체를 좋아는 하지만 논술에서 문학을 다루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문학 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문학이 복합적이고 모호하게 해석되는 것을 꺼리는 반면, 논술에서 다루는 문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문학을 이해하는 자신의 관점과 논술에서 적용하는 관점 사이 괴리감을 싫어하는 듯하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논술의 범주 안에서 문학을 다루는 방법의 부재에서 비롯된 어려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논술에서 다루는 문학은 작품이 아닌 텍스트의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문학을 작품으로 보면 감상의 대상이 되지만, 텍스트의 개념에서 보면 문학은 전체적으로 구성되는 정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마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체처럼 작품을 구성하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보를 확장할수록 해석의 가능성 또한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문학은 지적으로 숙련될수록 작품에 내포된 심층적인 의미를 더욱 폭넓게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문학을 텍스트로 받아들인다면 문학은 작가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사회문화적 요인을 떠나서 전체 의미망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면 문학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정보의 의미망을 구성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 

 

 

1. 문학을 작품으로 감상하기

 

2022년 경기대 논술에서는 정약용의 『수오재기』와 윤동주의 『자화상』을 제시문으로 활용하여 글쓴이와 자화상의 화자가 자아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고, 수오재기에 비해 자화상이 더 큰 서정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서술할 것을 요구하였다. 간단히 말해 시가 수필보다 더 감동을 주는 이유를 물은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논술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의 갈래에 따른 감상의 차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술 갈래와 서정 갈래는 일반적으로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바탕으로 구분한다. 교술 갈래는 세계를 자아화하고, 서정 갈래는 자아를 세계화한다. 즉 『수오재기』에서 글쓴이가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는 당시의 지배적 관념에 부합하는 체험으로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유도하는 반면, 『자화상』에서 공감은 화자의 주관적 체험이 독자들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유도되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모르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을 때의 체험이 주는 희열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차 확인할 때 얻는 희열에 비해 크다는 것이다. 

 

『자화상』에서 사나이가 산모퉁이 돌아 외딴 우물 속 자신을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는 행위는 불온한 시대에 대한 저항 이전에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한 쉼 없는 성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고지순한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구름 사이에 비친 외딴 우물 속 때 글은 자화상은 얼마나 낯설고 초라한 모습이었겠는가. 이러한 자화상은 한편으로 증오와 부정의 대상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연민과 성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럽게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와 끊임없이 화해해가는 것이다. 

 

독자들이 우물 속 자화상을 부끄럽게 마주하는 그 순간이 화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화자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자신의 체험으로 확장하는 순간이 된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로 돌아와 보면, 시가 왜 수필에 비해 더 큰 서정적 감동을 주는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부끄러움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감상자가 부끄러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수필에 비해 더 큰 서정적 감동을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문학을 작품으로 감상하는 것은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 능력보다 감상자의 주관적 감상 능력이라는 변수도 함께 작용한다는 점에서 까다롭다.

 

 

2. 문학을 텍스트로 분석하기

 

한편 문학을 텍스트로 분석하는 것은 문학작품의 감상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텍스트는 작품의 작가나 시대적 상황에서 벗어나 온전히 독자의 손에 맡겨진 것이므로 주어진 조건의 전체 의미망 안에서 자유롭게 재단하고 연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논술에서 활용되는 문학을 작품이 아닌 텍스트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작가와 시대를 벗어나서 문학을 보면, 문학은 정보의 망 안에서 텍스트로 재구성되어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김훈의 『남한산성』은 최근 수년 동안 논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청과의 화친을 둘러싸고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부분은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 논술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연세대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 장면을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대한 논의와 연결한 해석을 요구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의하면 평화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병자호란 가운데 조선은 격렬한 논쟁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체제의 장점을 수용했다고 보더라도, 내실을 도모할 수 없는 경제적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연세대 논술 문제 안에서 소설 남한산성은 해체되고, 외세에 종속되거나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고서라도 저항하는 것이 평화라는 의미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한편 다른 제시문에서는 경제적 안정은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것으로 진정한 평화에 위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연세대는 논술 문제에서 평화를 위해 민주주의의 가치와 경제적 풍요의 의미를 묻는 가운데 경제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 체제만으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남한산성』의 부분적 정보를 논거로 활용한 것이다. 

 

한편 성균관대는 『남한산성』의 같은 장면을 목적과 수단의 논의에서 활용하고 있다. 최명길은 실리적인 관점에서 조선왕조와 백성들의 생명을 최상의 목적으로 여긴다. 따라서 최명길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굴욕적인 외교조차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 반면 김상헌은 청과의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오랑캐의 침략에 맞서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김상헌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전쟁에서 패퇴하거나 백성들의 희생조차도 수단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처럼 목적과 수단은 얼마든지 전치가 가능하며, 무엇을 최상위 목적에 두느냐에 따라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 논술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 구조 속으로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을 끌어들일 것을 요구한다. 

 

다음으로 중앙대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이 가진 문제점을 분석하게 한 다음, 이러한 소통 방식의 한계와 효용을 물어보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논쟁의 장단점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의 맥락을 강조한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양쪽 모두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치의 양보 없이 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당장 직면한 현실의 위기 앞에서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한다는 명백한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토론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 소모적인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도 포함하고 있다. 중앙대는 대화의 상황에 주목하여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화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토론의 장단점으로 확장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내용을 중심으로 보면, 『남한산성』은 대학별 논술의 출제 의도 안에서 똑같이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한적인 해석이 가능할 따름이다. 즉 소설 『남한산성』은 각 대학의 논술 문제가 의도한 의미망 안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할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감상의 대상이 아닌 텍스트로 활용된 것이다. 

 

 

‘라쇼몽 효과’는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 유래하여 동일한 현상도 관점이 다르면 해석을 달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일컫는 용어이다. ‘라쇼몽(羅生門)’은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의해 1950년에 흑백으로 제작된 영화로,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사무라이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각각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변명을 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영화 ‘라쇼몽’이 주는 충격과 ‘라쇼몽 효과’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의 감상과 논술 속 문학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영화 라쇼몽의 감상은 작업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작가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해석하거나, 영화 자체의 영상이나 상황을 보면서 받은 충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라쇼몽 효과’를 바탕으로 영화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간단하다. 영화 ‘라쇼몽’을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과 유사하게 사무라이의 죽음을 목격한 각각의 인물들이 끝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된다. 즉, ‘라쇼몽 효과’라는 의미망 안에서 ‘라쇼몽’이라는 영화가 부분적인 텍스트의 기능을 한 것이다.

 

논술에서 인용되는 문학도 이와 같다. 논술에서 문학은 대부분 감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사회 안에서 다양한 갈등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현상으로, 문학 안에 드러난 다양한 상황은 사회를 이해하는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사례들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문제가 요구하는 어떤 의미와 피드백하며 전체적인 문제의 의도 안에서 부분적으로 활용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논술에서 문학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따라 분석해야 하는 텍스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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