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류가 시작되고 어느덧 하루가 흘렀다. 표류 첫 날의 그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밤새 뒤척이면서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온몸이 피곤하기 그지없다. 태어나서 이렇게 심각하게 후회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마냥 좋았던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당장 대학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다들 그 대학 레벨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하니 그 불안함은 극으로 치닫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 수학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소위 명문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표류 둘째 날 새벽
뭔가 해야 해 !!
밤새 뒤척이면서 내린 결론은 단 하나. 수학을 잘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은 수학을 접고 놀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지금의 표류 상황을 끝내는 유일한 해결책은 수학을 잘하는 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불안한 가운데 알 수 없는 설렘이 드는 것은 또 무슨 감정이지? 단지 새벽에 느껴지는 여명 때문에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뭔가 잘 되려는 징조가 느껴지는 걸까?
여하튼 난 이 표류를 끝내기 위해서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한다.
표류 둘째 날 아침
SOS !!
문득 떠오른 단어가 SOS. 그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 그러면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나처럼 표류를 경험했다가 극복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도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변의 수학 천재라고 불리는 애들에게 다가가니 참 멋쩍다. 나를 이상한 놈 또는 허접한 놈으로 쳐다보지나 않을지 괜히 신경 쓰인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내가 덜 급한 모양인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여기저기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나서 그 사람들의 조언을 모아서 잘 이용하면 지금의 표류도 끝이 보일거야. 좋은 방법을 한데 모아두면 그야말로 슈퍼 울트라 방법이 나오겠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표류 둘째 날 점심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표류 첫째 날 점심도 배가 고팠는데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 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둘째 날 점심도 배는 고픈데 그 정도가 죽을 지경이다. 수학 표류를 끝낼 목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정말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다녔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부터 주변의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 심지어 한 번도 본적 없는 어떤 성공한 선배의 글까지. 모조리 만나서 얘기 들으면서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희망이 샘솟다가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면 절망의 늪으로 빠지고, 감정 기복이 너무나도 심했다.
저마다 하는 얘기들이 전부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은 잡히지 않았다. 여러 방법을 잘 조합해서 나한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될 줄 알았는데 혼란만 더해졌다. 오답노트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오답노트를 작성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 얘기를 들으면 이 사람 말이 맞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 말이 맞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수학의 표류가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 온다.
표류를 끝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뭘 먹어도 이 배고픔은 채워지지가 않을 것 같다.
표류 둘째 날 오후
간섭이 시작됐다.
나른한 오후, 갑자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소리는 맞는데 왠지 듣고 싶지가 않다. 부모님이 등장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저 양반들은 왜 갑자기 등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더하기 빼기도 빨리 안 되실 텐데 도대체 나의 수학 표류를 끝내는데 무슨 도움을 주시려고 그러실까?
내가 조사했던 방법이나 자료들도 감당이 안 되는데 어디서 들으셨는지 오만 가지 방법을 말씀하신다. 그러다가 결국 친구 분의 따님까지 등장했다.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아이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흉기보다 더 무섭다. 그 아이는 도대체 못하는 것이 왜 없지? 거기다 예쁘기까지 하다는데 그럼 난 저주받은 인생인가?
갑자기 엄청난 고독이 밀려온다. 햇볕에 꽃들은 저마다 그 아름다움을 더해 가고 푸른 잎들은 광합성을 하느라 분주한데 햇볕의 기운에 내 영혼은 도리어 말라 들어가는 것 같다.
표류 둘째 날 저녁
기진맥진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정신이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얼마나 수학 앞에서 초라하고 영혼조차 말라 들어갈 지경이었는지 맞닥뜨리게 되니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 심지어 ‘내가 사람인가?’라는 의문조차 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불안함을 피하려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오락을 하거나 컴퓨터에 빠져 살았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잠시 잠깐의 불안함은 덜지 모르나 그 뒤에 닥쳐올 더 큰 불안함을 몸서리치게 느끼고 있다.
기진맥진 상태가 되니까 왠지 모르게 뭐가 깔끔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수학 표류를 끝내기 위해 그렇게 방법들을 찾아 다녔건만 오히려 혼란스러움만 더해졌는데, 그것들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답답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다. 더 나아진 것은 없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들지.
문득 든 생각이 ‘수학’이라는 과목이 도대체 뭐지? 내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봤던 적이 여태까지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 의문이 드는 걸까?
아, 뭔가 실타래가 풀릴 것 같은 예감이......
이 글은 4년 간 지켜본 어느 고등학교 남학생의 기록들에 근거한 실화다. 이 학생은 다시 재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4년 째 되는 올해 수학에 있어 표류가 끝이 나려는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수학 공부를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할 지 선택할 때마다 고민에 빠졌던 이 친구의 표류 생활을 들여다보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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