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군이 로봇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카이스트 합격 후 조 군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떤 과학잡지를 보면서 로봇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님을 졸라 대회를 나가게 됐다"면서 "대회에서 굉장히 좋은 성과를 거둬 그 때부터 흥미도 생기고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후 조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경진대회에 참가, 교사의 도움 없이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부산시 정보영재원에 선발돼 4년 간 영재교육도 받았다.
로봇 영재로서 조 군의 천재성은 중학생 시절 고교생 선배들을 제치고 로봇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주목받게 됐다. 조군은 2007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한국대회에서 대상인 과학기술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세계대회에서는 3등을 차지했다. 조 군의 수상 실적은 60회가 넘는다.
로봇에 대한 조 군의 열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은 인문계고 진학 후 전문계고로 전학을 간 것이다. 당초 조 군은 인문계고에 진학, 잠시 로봇에 대한 꿈을 접고 학업에 열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로봇에 대한 꿈과 열정이 조 군을 강하게 움직였고 결국 조 군은 전문계고인 부산 대진정보통신고로 전학했다. 대진 정보통신고를 선택한 이유는 로봇 동아리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봇 분야에서 우수성과 천재성을 나타내던 조 군은 2009년 카이스트 입학사정관전형에 도전, 당당히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일반계고 출신도, 과학고 출신도 아닌 조 군이 카이스트에 입학하자 언론 또한 조 군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 군은 입학사정관전형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조 군은 얼마 전 스스로 로봇의 꿈을 접었다. 현재 성적 부진, 학교 부적응, 이성 문제 등 조 군의 죽음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동시에 입학사정관전형도 역풍을 맞고 있다.
'로봇 영재', '로봇 박사'로 각광받던 조 군이 꿈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이 있다면 대학도, 사회도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은 정확하지 않은 죽음의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 하는 것이 아닌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입학사정관전형에 제도적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해야 하고 학생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 대학들도 더욱 분발해야 한다. 또한 아직 어린 나이에 '로봇 영재다', '로봇 박사다' 하면서 사회가 너무 큰 부담을 준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 바로 이것이 조 군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카이스트가 조 군에 대한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재발 방지 약속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명심해야 한다. 지금도 조 군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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