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펀(fun) 해질 때까지 … ‘법률 닥터스의 꿈’

원은경 / 2010-02-04 16:44:53
법무법인 ‘율촌’ 국제변호사 오수정씨(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99학번)

“간단한 숫자 두개- '26'이었다. 방안은 호기심으로 술렁거렸다. 잠시 그대로 있던 홈스는 숨을 가다듬으며 학생들을 주시했다. '여러분, 이 숫자를 기억해 두십시오. 지구상에는 수천 가지의 질병이 있지만, 의학적으로 치료법이 개발된 것은 스물여섯 개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가 짐작일 뿐입니다.”



러브스토리의 작가 에릭시걸의 ‘닥터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버드 의대생인 주인공 바니와 로라의 사랑, 흑인이라는 이유로 의사로서의 삶을 빼앗긴 베넷이 법학공부를 해서 의학전문변호사가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린 소설로 유명하다. 당시 닥터스의 베넷을 보고 로스쿨에 대한 꿈을 품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오수정(31)씨 역시 중학교 때 닥터스를 읽고, ‘짐작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사람 사이의 일들’을 분명히 하는 변호사를 꿈꾸었다고 한다.

“세상에 수천가지 질병이 존재하고 그에 맞는 치료법이 필요하듯,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다툼을 중재하고 치유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오 변호사는 미국 로스쿨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로스쿨 위해 공대 진학 후 영문학 다시 공부
건대부고를 졸업하고 1998년 건국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에 입학한 오 변호사는 언어의 기초인 음성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공대에 진학했다. 뭐든 시작하면 기본부터 착실히 다지는 성격 때문이다. 그렇게 1년 남짓 다니던 학교를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부모님 몰래 휴학을 하게 된다. 건국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 오성삼 교수가 동료교수에게서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놀랐던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딸의 계획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공대에서도 열심히 준비하면 할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 하면서도 오 변호사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다시 공부를 해 1999년 건국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오 변호사는 그때부터 미국 로스쿨 진학을 위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다. 남들이랑 똑같이 해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다짐한 오 변호사는 학과수업에 누구보다도 충실히 해 졸업평점이 4.2만점에 4.0학점을 얻기도 했다. 특히 언어에 대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4학년 때 새로 부임해 온 영문과 한정임 교수의 음성학 강의가 큰 힘이 되었다. 이미 공대에서 음성학에 대한 기초이론을 쌓았던 상태에서 한 교수와의 만남은 오 변호사의 학습수준을 한 단계 높인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오 변호사는 4학년 말 쯤 미국 LSAT(법과대학원 입학시험)에 단 한번 도전으로 합격했다. 이에 대해 오 변호사는 “시사적인 영어에 대한 이해는 대학 때 형성된다고 보는데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초. 중. 고등학교 12년 중 정확히 절반을 미국과 한국에서 공부했다는 오 변호사는 미국에서의 생활이 로스쿨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부족한 영어실력을 극복하고자 도서관 문이 열리는 새벽 5시에 자리를 잡아가면서 공부에 매달렸다. 공부를 하면서도 오 변호사는 대입 보습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쳐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미국에 유학 가서 온갖 궂은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이룬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유학시절, 3시간 수업 위해 하루 12시간 준비
2003년 2월 초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오 변호사는 잠시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에서 국제협력 관련 업무를 하기도 했다. 미국에 가면 국방공급계약을 전공으로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서였다. 이때 막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헤리티지재단과 청와대 만찬을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오 변호사가 사회를 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2003년 9월 미국 보스턴칼리지 법과대학에서 3년 동안의 JD과정을 마친 후 워싱턴DC에 있는 조지타운 법과대학에서 1년간의 LLM(Master of Laws)과정을 이수한 오 변호사는 2007년 5월 졸업 후 귀국, 7월부터 지금까지 법무법인 율촌 소속 국제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오 변호사는 JD과정 중 로드아일랜드 연방법원 판사 보좌 업무를 지원해 일했던 경험이 변호사로서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전한다.

판사의견서(판결문) 작성을 보조하는 업무였는데 정부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지원했던 것이 중립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가치관을 세우는데 큰 힘이 됐다. 처음에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변호사가 재판정을 자유롭게 다니며 멋을 부리는 것을 상상했는데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체험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한 오 변호사는 여전히 언어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어렸을 때부터 토론문화에 익숙한 현지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루 3시간 강의를 듣기 위해서 8시간 수업준비를 하고, 수업이 끝난 후 4시간을 복습하는 등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공부에 집중했다. 로스쿨 졸업 후 항공무기구매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법무관을 지원했지만 군사기밀에 해당해 시민권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라서 공정거래로 전공을 바꾸었다.
지금까지 해양호스, 항공사 물류비, LPG 담합 등 공정거래에 위반하는 담합에 대한 굵직굵직한 조사 업무를 주로 해오고 있다. 오 변호사는 일이 시작되면 새벽에 퇴근하는 날도 많지만 업무가 즐겁다고 한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 아닌 늘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고, 예상되는 공정거래 위반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고 공부하는 일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참여한 공정거래 관련 사항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해결되었을 경우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기회가 되면 오 변호사는 아버지처럼 사회로부터 받은 고마움을 남을 위해 봉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버지 오성삼 교수는 부친을 일찍이 여의고 생활이 어려워 건국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을 때,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교육자의 꿈을 이뤘다고 한다. 이후 오 교수는 ‘장학금 물려주기 운동’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위한 후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없는 사람일수록 공부만이 희망”이라는 오 교수 어머니의 가르침이 ‘나눔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뜻 이어 ‘나눔의 바이러스’ 계획
3년 전 결혼한 오 변호사는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새해 꿈이다. 경쟁(?)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남편 역시 미국 로스쿨을 마치고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남편과 같이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이 취미인데 출산 후 국내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어 최근 장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고 3 수험생에게 오 변호사는 현재의 상황이 힘들긴 하지만 한발 떨어져서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한다. 즐기게 되면 집중하게 되고, 열정을 가지면 자연히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등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되고, 스쿠버는 입수할 때보다 출수할 때 더 주의를 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시련으로 다가올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심호흡을 하고 자신을 관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의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통(pain)을 즐거움(fun)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fun 하십시오.”
뻔한 스토리 아니냐며 인터뷰를 고사했던 오 변호사의 꿈과 도전의 이면에는 어려울수록 펀펀(fun fun)해지려고 노력한 지난한 과정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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