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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포스터. 국가보훈처 자료 |
[대학저널 온종림 기자] 목원대학교는 매년 추모식을 통해 위대한 희생을 기리고 있는 윌리엄 쇼 부자가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보훈처와 한미연합사는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에 크게 기여한 영웅들을 선정했다.
윌리엄 쇼 부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2대에 걸쳐 대한민국과 목원대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은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밴 플리트 부자,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이다.
아버지인 윌리엄 얼 쇼 선교사(1890~1967, 한국명 서위렴)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제도를 도입한 인물이다. 1921년 아내인 아델린 해밀턴 쇼와 한국으로 와 선교활동 시작했으나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돼 필리핀에서 활동하다 1947년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다. 그는 전쟁의 비참한 파괴와 살육의 현장에서 군목으로 일하며 피난민을 구호하는 활동도 벌였다. 전쟁 직후에는 목원대 전신인 ‘감리교대전신학원’의 창립이사이자 신약 교수로 활동했다.
아들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1922~1950, 서위렴 2세)는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이다. 미국의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에서 해군사관학교(해안경비대) 초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또 해방 후 한국 정부 수립 전 미 군정청(점령지 군사정치 기관)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도 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돕겠다”며 1950년 미국 해군에 재입대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한국 지리에 밝고 한국말을 잘했던 덕에 해군 소속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복작전에서 정탐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50년 9월22일 오전 정찰을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현재 윌리엄 쇼 부자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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