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다닐 때인 90년 대만 해도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요즘처럼 언급하기 두렵고 껄끄럽다거나 혐오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 말들은 젠더 갈등과 같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의 권익 보호에만 앞장서는 이익단체와 같은 개념으로 되어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강조해 왔고 지금까지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양성평등의 가치는 담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20년 9월 세상을 떠난 미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의 행보를 눈여겨 볼만하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였음에도 남녀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의 수단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여성들이 여성단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히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스트 반대 세력이 가장 원하는 전개라고 생각한다”면서 순수한 여성단체 대신 남성들도 함께하는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을 택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집 바깥에서 완전한 평등을 이루려면 남성들이 집에서 동등하게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 남성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가 된다”면서 불평등한 법이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초래하는지 증명하기 위해 남성이 원고인 사건을 맡기도 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스티븐 와이젠펠드라는 남자다. 이 자는 아이를 낳다 죽은 아내를 대신해 살아남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집에 남고자 했다. 하지만 연방 조세 규정상 집안에 남아 가족을 돌보는 남성에게는 세금공제의 혜택을 주지 않았다. 조세제도 자체도 제정될 때 이렇게 남성이 육아 지원을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긴스버그는 이러한 남성이 법적 체계하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법이 가진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도전하는 것이 그녀만의 성 평등권 회복 방법이었다. 여성의 인권을 진일보하기 위해서 남성에게도 제도상 불평등한 이슈가 있다면 해결해 법적인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여성 인권이라는 말 대신 양성평등을 주창했다.
‘제2의 성’,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부터 ‘82년생 김지영’까지 페미니즘에서 전제로 하고 있는 남성들이나 시어머니와 같은 기성세대들을 타협 불가능하고 권위주의적이며 꼰대와 같은 남녀 차별적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들로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러한 소설이나 글을 읽을 때마다 큰 틀에서는 공감이 가지만 모든 부분에 공감하기 힘들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현재의 젊은 남성들과 기성세대들은 달라지고 있고 달라졌다. 그래서 페미니즘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성만이 아닌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치솟는 집값과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요즘 결혼하는 부부들은 맞벌이가 대세이다. 여성의 자아실현과 같은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양가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절박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맞벌이가 필수인 것이다.
그런데 자녀가 태어나면 맞벌이 부부에게 큰 고민이 생기게 된다. 자녀는 헌신적인 관심과 보살핌의 시간과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는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지도 않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모든 직업 세계 자체가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일정 기간 육아를 위해 잠시 일터를 떠나있어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 구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성들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추고 이러한 공동의 이슈에 페미니스트들이 발벗고 나설 때 모두가 쉽게 함께할 수 있고 변화도 앞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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