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고려인, 재일 조선인 등 '코리언'의 민족정체성은 '언어'가 아닌 '문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이러한 주장은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이 지난 27일 건국대 인문학관에서 마련한 '코리언의 생활문화 비교연구' 국내학술심포지엄에서 제기됐다.
이날 정진아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는 '민족어의 현실과 통합의 미래'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에 거주하는 재러 고려인과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조선인 가운데 집에서 일상 대화를 우리말(민족어)로 하는 사람은 2%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민족정체성은 오히려 타 지역 코리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2011∼2012년 10개월에 걸쳐 일본 도쿄·오사카의 조선인, 중국 옌볜의 조선족, 러시아 연해주·사할린의 고려인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족정체성과 생활문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뤄졌다.
연구에 따르면 재러 고려인의 1.8%, 재일 조선인의 1.9%가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했으며 고려인의 72.7%, 재일 조선인의 81.2%는 현지어로만 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와 현지어를 섞어 쓴다는 응답은 각각 23.6%, 15.6% 였다.
정 교수는 “고려인의 경우 연령대가 낮을수록 러시아어 사용 비율이 높았고 재일 조선인은 일본 국적-한국 국적-조선적의 순서로 일본어를 많이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재중 조선족의 경우 한국어를 쓰는 비율이 70.4%에 달했다. 정 교수는 "재일 조선인은 일상적인 차별로 한국어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점차 민족어를 잃어갔고 고려인은 오랜 기간 고국과 멀리 떨어져 살며 현지 적응 과정에서 언어를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말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에도 거주국 언어와 섞이면서 음운, 어휘, 문법 등에서 변화가 생긴 사례가 많았다.
가령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어의 영향으로 '어느 선생님'을 '누구 선생님'으로 표현하고, '약을 먹는다'를 '약을 마신다'고 하는 식이다.
정 교수는 “코리언의 언어습관은 그들이 처한 정치사회적 조건과 삶의 방식 속에서 변모해왔다”며 “민족정체성은 코리언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소속 국가에서의 삶의 조건이 그들의 언어습관을 규정했다”며 “이제는 민족정체성을 기준으로 코리언의 언어습관을 평가하는 방식을 재고하고, 코리언의 삶 속에서 코리언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언어생활 이외에도 교육·직업문화, 의식주, 가족문화, 통과의례 등 각지 한인의 다양한 생활문화에 대한 비교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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