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다면 한 가지에 미쳐라"

김준환 / 2013-02-26 15:05:52
'뱀 마니아' 아들을 한양대 보낸 한민영 씨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한민영(45) 씨는 ‘뱀 마니아’ 아들을 둔 덕분에 최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한 씨의 아들 차승훈 군은 취미로 키운 뱀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 덕분에 지난해 10월 입학사정관전형으로 한양대 생명과학과에 입학이 확정됐다. 특히 2013년 계사년(癸巳年)을 맞아 방송과 일간지 등에서 ‘뱀 전문가’로 소개되면서 한 씨 역시 매스컴을 타게 됐다. 게다가 승훈이는 고3 시절인 지난해 7월 뱀 입문서 <세상에서 사장 아름다운 곡선 뱀>이란 책을 출간하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 씨는 “승훈이가 중학교 시절까지 자신은 사교육에 누구보다도 관심 많고 아이의 미래를 부모가 직접 디자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위 ‘치맛바람’으로 일컬어지는 엄마”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고 가정에도 경제적 위기가 찾아오면서 한 씨의 교육관이 점차 변해갔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비행과 탈선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를 돌이켜보면 승훈이는 뱀 관련 책을 보면서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승훈이) 사춘기 때 직업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었는데 ‘돈을 좇아서는 안 되고 자신이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이 때 승훈이는 자기가 정말 관심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뱀’에 대해서는 누구못지 않은 전문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아요.”

스스로 ‘작은 성취’를 쌓게 하라
한 씨는 “승훈이가 어렸을 적부터 개와 고양이는 물론 토끼, 병아리, 다람쥐, 거북, 고슴도치 등 다양한 동물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직접 키우는 동물에게 알아서 먹이를 주고 배변물을 치우고 분양도 하면서 동물들이 커 가는 과정을 보는 게 승훈이에게 특별한 재미였었나봐요. 그리고 어느 새 승훈이만의 일상적인 즐거움이 돼 버렸죠. 특히 자신만의 공간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면서 모든 생활에 자신감이 붙게 됐죠.”

승훈이가 실제 뱀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부터다. 중학교 1학년 첫날 첫시험 수학 점수가 자신의 예상보다 적게 나오자 절치부심해 공부에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자신이 목표한 점수를 받자 당당히 뱀을 키우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하나의 성취를 이뤘으니 또 다른 성취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 씨는 “승훈이가 직접 뱀을 기르는 것은 물론 뱀의 생태를 자세히 알기 위해 뱀에 대한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고 뱀 관련 서적과 논문까지 속속 뒤져가며 뱀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을 섭렵해 나갔다. 하지만 뱀에 대한 승훈이의 모든 관심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내 정보력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 원서를 주문해 모르는 영어 단어들을 찾아가며 원서와 씨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파충류 연구 분야의 유명한 해외 석학들에게 이메일로 편지를 써 가며 궁금한 내용들을 질문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이 같은 승훈이의 노력은 성취동기와 자발성을 강조한 한 씨의 보이지 않는 힘이 컸다. “지금도 ‘뱀’이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데 부모 입장에서 딱히 도와줄 방법도 없더라고요. 그냥 아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전부였어요. 다만 반드시 공부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작은 성취’를 쌓아가면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게 부모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미칠 준비 됐습니까?”
“미칠 준비 됐습니까?” ‘강남스타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싸이(PSY)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싸이만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싸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목표 달성을 위해 미친듯이 그 일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승훈이 역시 ‘미치면 다 된다’는 말을 온 몸으로 보여 준 케이스다.

한 씨 역시 아이가 이뤄낸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미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승훈이는 옷을 입을 때도, 소지품을 들고 다닐 때도 뱀 모양만 있으면 무조건 마음에 들어했어요. 아이가 뱀에 대한 책도 내고, 뱀 덕분에 대학에 합격한 걸 보니 ‘한 가지 일에 미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아이 덕분에 제가 한 수 배운 셈이죠.(웃음)”

그렇다면 승훈이는 어느 정도까지 뱀에 미쳐 있었던 것일까? 한 씨는 중학교 시절 승훈이의 얘기를 들려줬다. 시험 시간에 문제를 다 풀었는 지 남은 시간에 시험지 뒷면(이면지)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못 푼 문제를 검토하는 데 남은 시간을 보냈지만 승훈이는 그렇지 않았던 것. 당시 감독하던 선생님이 승훈이 시험지 뒷면을 자세히 보니 영어로 깨알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었던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뱀 이름’에 대한 학명(생물학에서 쓰는 세계 고유명칭)이었던 것.

또 다른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승훈이는 고교 시절 매일 밤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이하 ‘야자’)을 했는데 한 씨가 보기에 (아들에게서) 전혀 피곤한 기색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야자 시간 동안 승훈이는 즐거워 보였다. 이유인즉슨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뱀에 대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였다. 책가방 속에 뱀에 관련된 두꺼운 원서를 넣고 다녔고 야자 시간에 공부는 뒷전인 채 원서 번역에 몰두했다.

“다른 아이들은 야자 시간에 학업 공부에 집중했지만 승훈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원서를 번역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수험생을 둔 부모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죠. 승훈이 입장에서는 번역 작업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으니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도 피곤하지 않았던 거예요.”

자녀 교육의 중요 덕목 ‘신뢰’
한 씨는 자녀 교육 가운데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씨는 “승훈이의 경우 수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수시 6회 카드를 아이가 알아서 사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한 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항상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이와 부모가 선생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서다.

현재 어린이집 교사인 한 씨는 어린이를 맡긴 부모들에게도 이 같은 교육 방침을 분명히 밝힌다. “어머니들이 어린이집 교사에게 아이를 믿고 맡길 때 교사들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즐거워하고 밝아지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부모들의 생각도 바뀌게 되죠.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을 둔 부모님들도 일단 학교 교육을 신뢰하고 아이를 맡기길 하는 바람이에요. 선생님을 신뢰하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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