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음화, 고영우가 그린 침묵의 초상

강승형 기자 / 2025-10-31 16:20:32
‘존재의 부재’를 시각화한 현대미술의 독보적 실험
실존주의를 넘어선 감정의 역설, 한국 현대회화의 새 지평 열다
제주 4.3과 공항장애를 예술로 승화
 금보성아트센터 제공

 

감정을 지우는 방식으로 감정을 환기하는 화가, 고영우는 전통적인 표현주의나 실존주의 틀에만 가두기엔 지나치게 복합적이고 실험적인 작가다. 그의 회화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감정이 사라진 자리, 침묵의 흔적, 존재의 공백을 시각화하며 현대미술사의 새로운 언어로 기록되고 있다. ‘감정의 음화’라는 비평 개념이 말하듯, 고영우는 감정의 형상화를 거부하며, 지움과 덮음, 흐림을 통해 감정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고영우의 작품은 현대미술사에서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실존적 인간 군상의 고뇌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 소비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시각문화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가 그린 인간 형상은 철저히 익명화돼 있다. 표정이 없고, 관계가 없다. 구체적인 인물묘사 대신 군상의 실루엣이 그림 속을 채우며, 개별 감정이 아니라 집단적 공허를 암시한다.

 

 금보성아트센터 제공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의 회화가 전통적인 인물화의 개념을 어떻게 해체하는가다. 고영우의 초기작은 크레파스와 유화 등을 활용해 비교적 뚜렷한 윤곽의 인물을 묘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형태는 점점 해체되고, 색은 꺼지며, 인물은 존재의 외곽만을 남긴 채 사라져간다. 이는 추상표현주의의 형식 실험과 유사하면서도, 그 본질은 ‘감정의 소거’를 통해 감정을 호출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독립된다.

고영우의 색채 사용 또한 회화사에서 이례적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푸른색조와 회색조는 단순한 우울이나 고통의 재현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정지’된 상태, 마비된 감각, 즉 감정의 기능 상실을 암시한다. 그의 대표 연작인 ‘너의 어두움’ 시리즈는 말 그대로 감정이 소멸한 이후의 장면이며, 이는 ‘정서적 탈감각(Numbing Emotion)’이라는 현대사회의 병리학적 징후를 미학적으로 구현한 작업이다.

또한, 고영우 회화는 리듬이 있다. 단순히 정적인 화면이 아니라, 덧칠과 긁기의 반복을 통해 감정의 시간성과 반복성, 되돌림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조형미를 넘어, 감정의 구조적 해체와 재구성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관람자에게도 회화적 감상의 차원을 넘어 정서적 체험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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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드물게 ‘감정’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드문 예다. 대부분의 감정 표현이 외부 발산이나 서사 중심의 서정성에 머무르는 반면, 고영우는 감정 그 자체보다 감정이 부재한 상태, 그 침묵과 공백을 회화로 끌어낸다. 이로써 그는 존재론적 회화의 새로운 미학을 제안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표현 지형을 확장시킨다.

결과적으로 고영우의 미술사적 위치는 단순한 인물화 작가가 아니다. 그는 감정이 사라진 시대에 감정을 다시 호출하는 실천가이며, 감정의 부재를 회화로 환기하는 미학의 개척자다. 그의 작품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지워진 감정’을 통해 자신을 다시 읽어내는 경험이다. 이는 그 어떤 언어보다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고영우는 제주 섬에서 태어났다. 육지와 단절된 물리적 환경은 그에게 자연스레 고립감과 단절감을 각인시켰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지리적 고립이 아니라 정서적 단절로까지 번졌다는 점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불안과 공황장애를 겪었고, 결국 섬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갇혀야 했다. 세상과 단절된 그의 삶은 곧 예술로 치환됐다. 고영우는 그 고통을 회화로 부조했고, 그가 느낀 고립과 침묵, 부재의 감각은 그림 속 군상과 배경 속에서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화가로서의 삶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는 종종 “내 그림은 살기 위해 그린 생존의 그림”이라 말했다. 의식주가 아닌 그가 앓고 있는 공항장애라는 갇혀 있는 삶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떠날수 없는 섬으로 선택된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했가.그의 작품 세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두운 실루엣과 텅 빈 얼굴, 익명성은 바로 그 생존을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세상과 단절되고,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상태에서 그는 내면의 감정을 스스로 마주해야 했고, 그 감정조차 마비된 상태를 직시해야 했다. 고영우의 회화는 단순히 미학의 차원을 넘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절박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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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는 그에게 외부 세계로의 도피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길을 열어줬다. 고영우의 그림에는 그가 마주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침묵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그것을 감정을 덧칠하고, 지우고, 다시 긁어내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흔히 미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지만, 고영우에게 회화는 감정을 ‘지우는 예술’이었다. 감정을 비워내는 반복의 행위 속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감정의 존재를 재확인했고, 그것이 바로 ‘감정의 음화’로 귀결됐다.

그가 선택한 기법 역시 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크레파스, 아크릴, 유화, 긁기, 덧칠하기, 지우기… 이는 단순한 재료의 선택이 아니라, 감정을 밀도 있게 압축하고 소거해나가는 ‘물리적 실천’이었다. 화면에 드러나는 형상은 최소화되지만, 그 화면을 이루는 층위와 밀도는 오히려 작가의 고통의 시간을 압축한 감정의 지층이 된다. 고영우의 그림을 마주하는 일이 ‘보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느끼는 행위’로 전환되는 이유다.

오늘날, 고영우는 단지 외딴 섬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작가가 아니다. 그는 자기 고통을 감정의 음화로 전환시켜낸 현대미술의 기록자이며, 침묵의 언어로 감정을 발화하는 유일한 화가다. 인간이 감정을 잃어가는 시대, 고영우는 지움과 침묵을 통해 감정을 되살려낸다.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회복하고,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고영우 회화의 궁극적 가치다. 그는 말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감정을 그림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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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우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배경은 바로 제주 4·3이다. 그의 고향이 제주라는 사실은 단순한 출신지를 넘어서, 집단 기억과 역사적 트라우마의 계승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제주 4·3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오늘날 제주 도민들의 무의식 속에 여전히 침잠해 있는 집단적 상흔이다. 고영우 역시 그러한 상처의 공기를 호흡하며 자랐고, 그 공기는 그의 그림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었다.

제주 4·3은 말해지지 못한 기억, 감춰진 목소리, 억압된 감정의 집합체다. 그리고 고영우의 회화도 마찬가지로 ‘말하지 않음’의 미학을 통해 감정의 실체를 환기한다. 그는 피해자나 사건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어두운 실루엣, 지워진 얼굴, 익명화된 군상들로 제주도민들이 겪은 정체불명의 공포와 불안을 재현한다. 직접적으로 항쟁을 그리지는 않지만, 그의 화면은 시대의 고통을 비정형의 감정으로 휘감는다.

고영우는 4·3 세대가 아닐지 몰라도, 4·3의 그림자를 피해갈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제주인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고립성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제주 사회의 정서 구조는 작가의 내면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는 그 영향을 직접적인 언어 대신, 지움과 덮음이라는 비가시적 언어로 시각화해냈다. 그의 회화는 그러므로 개인의 심리적 고통과 집단적 트라우마가 교차하는 접점에서 탄생한 감정의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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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한 군상은 때로는 무력하게, 때로는 망연자실한 자세로 화면을 채운다. 그 안에서 뚜렷한 행동도, 표정도, 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곧 4·3의 집단 기억이 세대를 넘어 침묵의 유전자로 전이된 결과처럼 읽힌다. 고영우의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기억을 강제로 지워야만 했던 제주인의 모습처럼, 말 대신 침묵으로, 고함 대신 멍한 표정으로 시대를 견디고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고영우는 예술가로서의 ‘사적인 고통’을 ‘공적인 서사’로 확장시킨다.

이처럼 고영우의 회화는 단순한 자전적 고통의 표현을 넘어서, 집단적 상흔의 내면화이자 시각적 증언으로 기능한다. 그는 4·3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다시 끄집어내기보다, 그 비극이 남긴 감정의 여운을 시각화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예술’로 치환한다. 언어로 전달되지 못한 감정의 깊이를, 붓질과 덧칠, 긁기와 소거의 행위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결국 고영우의 작업은 섬의 고통이자 민중의 고통이며, 그 자체로 현대미술 안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묵직한 저항이다. 시대가 잊고자 했던 감정을, 지워진 감정의 음영으로 되살려내는 그의 회화는 단지 한 작가의 고백을 넘어, 공동체 기억의 미학적 복원이다. 그리고 이는 현대 한국미술사에서 매우 드물고도 귀한 시도다.

글 ; 금보성 백석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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