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출판문화원, ‘왜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나’ 출간

온종림 기자 / 2025-10-17 10:39:49

 

[대학저널 온종림 기자]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이 법철학자 강희원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신간 ‘왜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나’(부제: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를 출간했다. 이 책은 ‘nation’, ‘state’에 대한 언어학적 설명과 함께 고대의 영웅 숭배부터 중세의 성전(聖戰), 근대의 국가철학과 내셔널리즘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 목숨을 바치라는 ‘순국’을 합리화해 온 담론을 추적한다.


저자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순국의 의무가 강제된 역사적·철학적 맥락을 탐색하며 우리가 당연시하던 민족과 국가라는 가치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민족은 만들어진 신화이고, 평화를 위한 전쟁은 거짓말에 불과하며, 국가가 강요하는 죽음은 신성한 제의가 아니라 강제된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저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쟁이 아니라 비폭력을 선택할 용기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법철학과 정치철학, 사회이론에 관심 있는 인문 교양 독자를 비롯해 평화와 인권에 관심 있는 독자,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고 삶의 평화를 설계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필독서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곧 끝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두 국가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전쟁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반세기 넘게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병역의무가 있는 이 땅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적을 많이 죽일 수 있는지 연구하고 훈련하게 한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군대 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우리나라는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고 수출하기까지 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자신과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적군의 생명을 파괴하는 일을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군대를 거부하고 국가를 위하여 죽지 않을 자유가 있는가? 순국자들을 추모하고 영웅시하는 일은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전쟁은 인간의 본성인가? 인간의 집단적 질병인가? 국가권력자의 놀이인가? 평화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인가? 반인간적 욕구인가? 인간사회에서 평화란 전쟁과 전쟁 사이에 신기루와 같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기망(欺妄)의 현상인가? (22쪽)

‘왜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나’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을 멈춘 적은 없다. 그래서 전쟁이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철저한 평화주의자인 저자는 전쟁은 인간의 의무도 운명도 아니라는 걸 증명해 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민족, 국가, 전쟁, 순국 등 우리가 당연시하던 언어와 가치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개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깊이 탐구한다. 저자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찬양하는 죽음은 강제된 국가 폭력의 이데올로기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악인 전쟁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프랑크의 왕이 전개하는 전쟁을 회피하는 자들은 공동체로서 교회 전체, 가톨릭교의 교의(敎義), 성성(聖性)과 정의(正義), 그리고 성지로서의 왕국을 적대하는 자들이라고 천명되었다. 여기에서 어용 신학자인 크리스트교 교부들은 “프랑크 왕국을 위한 전쟁”이 바로 “성지수호를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선언하면서, 프랑크의 왕과 왕국을 위해서 죽는 것, 즉 순국을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승화시켰다. (68-69쪽)

저자에 따르면 순국과 순국 찬양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있었으나, 그 의미와 성격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중세 유럽인들이 믿었던 크리스트교이다. “중세에 지상의 조국 개념은 크리스트교에 의해 천상의 조국 개념으로 대체되었고, 순국의 성격도 정치적 행위가 아닌 종교적 행위로 이해되었다.” 크리스트교도들은 ‘진정한 조국’인 천상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성인’이라 부르며 추앙했고,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성지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감행한 십자군 전쟁이 처음의 의도와 달리 국왕과 조국을 방어하기 위한 명분으로 퇴색했지만, 전쟁에 참가한 “십자군 전사는 자신의 모든 죄가 사면되고,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확신했다.” 크리스트교는 십자군 전쟁을 성지수호를 위한 성스러운 전쟁으로 승화시키고 이데올로기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근대 이후 거대한 파괴와 대량살상은 내셔널리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저자는 “내셔널리즘은 국가권력이 살육과 파괴라는 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였다고 말한다. 그 이데올로기는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늘 정의(justice)로 포장해 왔다.

저자에 따르면 지배권력은 지방적 · 토착적 문화를 정복하거나 변형해서 획일적인 ‘국민문화’를 만들어 냈다. 내셔널리즘은 자기가 속한 네이션을 타자로부터 구별해서 의식하게 하고, 동지와 적을 나누어, ‘우리’라는 공동체 혹은 같은 영역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희생까지 불사하는 애정을 환기시켰고, 이는 권력자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저자는 우리에게 그토록 애정을 가지라고 주입하는 민족이란 지배자들에 의해 주입된 민족주의라는 환상을 통해서 생겨난다고 강조한다.

부르주아지가 장악한 근대 국가는 침략과 약탈을 통해 축적된 부를 ‘자본’으로 회전시켜, 자본을 무한히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자본이 더 많은 자기증식을 위해 자원과 시장을 찾는 과정에서 근대 국가는 다양한 방식의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고, 고도로 발전한 ‘자본’의 매개 작용에 따라 국가와 국가 간의 무한경쟁에 따른 파시즘적 총력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네이션 스테이트의 응집력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개인은 자기 생명보다 국가의 유지를 중시하고, 손에는 총을 들고, 중무장한 탱크를 몰며, 총알과 포탄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전장(戰場)으로 돌진해서 적국으로 지정된 다른 네이션 스테이트의 영토를 침공해 들어가 일말의 가책도 없이 그 터전을 파괴한다. 또한 그 구성원인 군인과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대량 학살하고,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고통을 감내한다. 여기에서 ‘왜 인간은 그렇게까지 국가를 중시하는 것일까? 아니, 왜 인간이 그러한 국가를 필요로 하는가?’ 등의 근본적인 물음들이 제기된다. (192쪽)

이 책에서는 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한 사상가들, 예컨대 휴고 그로티우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프리드리히 헤겔, 막스 셸러, 카를 슈미트 등의 전쟁 형이상학자들의 논리를 비판하기도 한다. 저자는 ‘전쟁을 통해 진보와 발전을 이룬다’, ‘전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활력이 생겨난다’, ‘전쟁 이후에 평화와 인류의 가치가 정착된다’는 등 전쟁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이것이 전쟁 중에 죽은 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전쟁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국가를 지지하게 만드는 정치의 방식이다. 내셔널리즘은 국가의 지배권력자가 자기들은 아무런 희생도 치르지 않으면서 계속 민중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민중을 지배하고 선동하기 위해 만들어 낸 정치적·사회적·심리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저자는 우리가 애착을 갖고 있는 ‘민족공동체’란 상상이며, “역사적‧문화적 구성물로서의 ‘민족’과 민족주의 담론이 가진 허구성에 대해서 냉정하고 엄중한 분석과 성찰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애국주의 현상과 순국에 관해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접근하는 저자는 “애국주의는 평소에 국가권력이 주도면밀하게 주입하는 온갖 상징조작에 의해서 개인들이 걸려 있는 집단적 최면현상”이며 “순국이란 애국주의의 극단적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좋은 전쟁 또는 나쁜 평화란 인류사에서 있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쟁은 최대 최고의 악(惡)”일 뿐이다. 저자는 “국민의 피와 땀을 파괴하는 최악의 범죄”인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가 바로 국가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에게 전쟁터에 나가 파괴와 살상을 행하라고 명령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잠재적 살상단체”이다. “군대는 그러한 국가의 잠재적인 살인 장치”일 뿐이다.

저자는 평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전쟁은 “범죄행위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고, 평화라는 목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평화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또 꼭 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이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좋은 전쟁 또는 나쁜 평화란 인류사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다. 피(blood)로는 피를 씻을 수 없다. 비폭력이 모든 정치적 · 도덕적 문제들의 해답이다.

전쟁이란 국가권력자들이 민족의 통일, 정의의 구현 또는 영토의 방위 등등 그럴싸한 미명하에 자행하는 범죄행위에 불과하다. 전쟁은 정치(正治)로서 정치(政治)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자가 자신의 영락을 위해서 국민의 피와 땀을 파괴하는 최악의 범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평화를 위해 단호히 전쟁 수행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260쪽)

저자는 국가를 위해 죽으라고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은 살인의 교사이자 살인행위 자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절대악을 강요하는 국가권력을 위해 죽기를 거부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누구나 “아니오!”라고 자유롭게 말해야 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호소한다.

“전쟁은 인간의 의무도 운명도 아니다.” 평화를 향한 진정한 용기란 전장으로 나가 살육과 파괴를 서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전쟁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비폭력을 선택할 용기이다.

 

[ⓒ 대학저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