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나쁜시장 좋은 정부

이한비 기자 / 2026-07-27 10:17:28
 
[대학저널 이한비 기자] 출판사 박영사는 임명현 저자의 『나쁜 시장 좋은 정부』를 출간했다. 이 책은 시장과 정부를 대립하는 두 축으로 바라보는 익숙한 논쟁에서 벗어나, 공동번영을 위한 자원배분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탐구한 경제·재정 분야의 연구서다. 화폐경제와 혼합경제의 작동 방식부터 시장실패, 정부의 공적 배분, 조세정책, 국가채무와 복지, 대한민국의 성장전략까지 폭넓게 다루며, 착하고 유능한 정부가 갖춰야 할 30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나쁜 시장 좋은 정부』는 저자의 전작 『대한민국 공공재정론』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후속 연구다. 전작이 정책과 사업을 실무자의 관점에서 다뤘다면, 이번 책은 나무보다 숲을 바라보며 국가경제와 공공재정의 근본 원리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많은 정책과 대책이 쏟아지더라도 경제생태계의 구조와 자원배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시장을 본래 이기적인 배분자로 규정한다. 시장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며, 이기심과 경쟁, 분업과 혁신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자연발생적 질서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은 인류를 가난과 질병에서 해방시키고 막대한 부를 창출했지만, 동시에 탐욕과 독점, 정보 비대칭, 외부효과, 양극화와 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 시장을 무조건 선하다고 믿는 것도, 반대로 시장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시장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대체하려 했을 때 경제의 활력과 혁신이 훼손되는 경우가 반복됐다. 저자는 시장을 이기려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의 힘을 이해하고, 그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며,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공적 수요를 책임지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나쁜 시장’과 ‘좋은 정부’는 경쟁자이면서도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책은 먼저 화폐경제의 본질과 신용창조의 구조를 살펴본다. 신용경제에서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순환하는지, 실물의 그림자에서 어떻게 자원배분을 주도하는 지휘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금융자본의 시대에 실물과 금융의 괴리가 왜 자주 발생하며, 이것이 어떻게 자원배분을 왜곡하는지를 밝힌다. 더불어 시장경제 최대의 화폐 수요자이며 공급자인 정부가 돈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고, 과잉금융과 부채피라미드의 붕괴를 어떻게 방지해야 하는지도 다룬다.

이어 혼합경제에서 성장과 분배를 위한 두 자원배분 장치로서 시장과 정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석한다. 정부의 공적 자금은 시장에서 조달되어 다시 시장으로 흘러가며, 시장과 정부는 하나의 경제생태계 안에서 움직인다. 책은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정부가 어디에 개입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공적 배분이 경제생태계를 살릴 수도, 잘못된 개입으로 오히려 시장을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한 분석에서는 능력주의, 불공정 경쟁, 지대추구, 독점과 양극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를 폭넓게 짚는다. 저자는 시장이 강력한 문제해결 장치이자 혁신의 경연장이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가치 창조보다 가치 착취가 앞서는 ‘악마의 맷돌’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시장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키고, 불공정과 약탈을 통제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공적 배분과 재정관리도 책의 중요한 축이다. 저자는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공공서비스와 공공재의 필요성, 공유지 관리, 공적 재분배의 정당성, 정부실패의 원인과 해법을 분석한다. 안전망과 복지, 공공투자, 교육과 인프라처럼 시장만으로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정부의 역할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대리인의 사익 추구와 비효율, 섣부른 시장 개입 등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도 함께 경계한다.

조세와 국가채무에 대해서도 기존 통념을 다시 검토한다. 책은 세금을 단순한 재원조달 수단이 아니라 공적 투자와 공유지 관리, 재분배, 경제 안정과 행태 변화의 수단으로 바라본다. 증세와 부채 가운데 무엇이 더 바람직한지, 적자재정은 언제 위험하고 언제 필요한지, 정부부채를 어떤 원칙으로 관리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며 ‘좋은 적자’와 ‘나쁜 흑자’라는 관점도 제시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인구 위기, 기후·생태 위기, 일자리 부족, 양극화, 중산층 붕괴, 돌봄 적자와 복지국가의 위기를 진단한다. 저자는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 불균형 성장정책을 다시 쓰고, 내수 확대와 균형발전, 중산층 복원, 새로운 소득보장체계와 돌봄 시스템 도입, 인구의 분산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결론에는 이러한 논의를 집약한 ‘유능한 정부의 자원배분 규칙’ 30가지가 정리되어 있다.

『나쁜 시장 좋은 정부』는 경제와 재정, 조세와 복지, 성장과 분배를 개별적인 정책 문제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자원배분 체계 안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공재정과 국가경제를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자, 정책 담당자와 공공기관 종사자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속성장과 공동번영의 조건을 고민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시장은 본래 이기적 배분자이기에 착하고 좋은 시장을 기대하기보다 그 힘과 위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며 “나쁜 시장에 고삐를 매고 공동번영으로 이끌어야 할 착하고 유능한 정부의 조건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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