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점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책들을 훑어보다가 책 속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친구들을 잠시 잊고 책 내용에 빠져들게 되었다.
팬티바람으로 흰 가운을 입은 검사관 앞에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굴욕적으로 서 있는 남자들의 사진이었다.
놀라운 것은 사진 아래의 설명 속에서 사진 속의 남자들이 대부분 이슬람교도인 터키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이슬람교도는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티바람으로 검사관 앞에 굴욕적으로 서 있다.
더욱더 비참한 것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알몸 구석구석 검사받는 모습이었다. 백인 검사관들은 마치 당나귀가 튼튼한지 보는 노예상인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노동자들은 처참한 광경에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1973년과 1974년 전반기에 유럽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비참했던 현실을 매우 사실적인 사진과 함께 쓴 <제 7의 인간>이라는 에세이다.
책 속의 글보다 영양실조에 걸린 듯 깡마른 몸의 이주 노동자 사진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을 힘겹게 버텨낸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더 생생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비인간적인 과정을 거쳐 선진국으로 들어왔어도 그들의 삶은 열악하기만 했다. 사진속의 이주노동자의 숙소는 마치 상자 속에 갇힌 동물 마냥 갑갑하고 비좁기만 하다.
그리고 이들이 처한 노동환경을 보면 대부분이 단순 기술직이 대부분이라 언제든지 교체가 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끝없이 찍어내는 똑같은 상품들처럼 그들은 인간이라는 것을 잊은 채 기계와 같은 삶을 반복할 뿐이지만 그래도 낡은 침대 머리맡에 있는 고향에 있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들은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유럽과 북유럽 사회 발전의 밑바탕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해야만 했던 식민지역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의 공이 매우 크다. 영국의 서인도 제도인 파키스탄인, 인도인들과 프랑스의 알제리아인, 네덜란드인, 수리남출신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유럽 선진국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풍요로움은 이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것이다.
최악의 내전을 겪고 있던 예멘에서 징집을 피해 인도적 체류자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청년이 우리나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싶어 이름도 ‘김한글’로 바꾸고 열심히 일했지만 차별과 냉대를 견디다 못해 4년 만에 다시 이름을 모하메드로 바꾸고 다른 나라로 떠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해 현재 선진국 반열에 들어 서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지금의 유럽 선진국들처럼 동남아 등지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을 보면서 책 속의 70년대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임금 체불에 관한 기사나 이들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의 수도·가스·전기 모두 취약하다는 신문 기사를 흔하게 접한다.
특히 코로나 시국 속에서 소득세는 내지만 재난지원금은 못 받는 이주노동자는 각종 의료나 복지 혜택도 열외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그냥 이방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에 와서 정당하게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개구리 올챙이였던 때를 생각 못한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 속의 이주동자들과 김한글 씨에게 한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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