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맘때쯤이면 고3 교실 벽에 붙는 종이가 있다. 바로 배치표다. 자신의 수능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예측한 자료인데, 나는 이 배치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오래전 이 배치표만 믿고 응시하다 가, 나, 다군 모두 불합격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례가 꽤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시=배치표’라는 생각을 하는 학부모와 수험생이 많다. 학부모들은 각종 정시모집 행사에서 “배치표는 어디 있나요?”를 연발하며, 수험생들은 담임교사에게 “배치표를 보니 제 점수로 갈 수 있는 제일 좋은 대학이 A대학인데 여기로 지원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한다.
물론 배치표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자료는 아니다. 배치표는 입시 초보자들이 지원 가능 대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다. 김영일교육컨설팅에서는 배치표로 아웃라인을 설정한 뒤, 여러 대학의 전형분석과 자신의 성적분석을 곁들이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치표 하나만 믿고 ‘남용’하는 행위다.
우선 알아야 할 게 배치표는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이다. 통계를 바탕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작년의 400점이 올해의 400점과 같다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제작업체마다 기준이 다르다. 내가 원하는 대학이 A배치표에서는 무난하고, B배치표에서는 아슬아슬한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명확한 설명도, 기준도 없다.
자료가 한정된 것도 문제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좀 더 세분됐지만 여전히 종이 배치표는 대학별 다양한 전형방법을 모두 담고 있지 않다.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 돌파구를 전혀 마련하지 못하는 것. 이처럼 배치표 하나만 믿다가는 3년 농사를 한 번에 망칠 수 있다.
게다가 배치표는 처음부터 소신지원을 못 하는 보이지 않는 덫으로도 작용한다. 관악고 3학년 부장인 박순철 교사는 “배치표에 맞춰 합격 위주로 고려하다 보니 원하지 않는 학교, 학과를 선택하기 마련”이라며 “설사 합격했다 할지라도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 배치표가 만능이 아니라 치자. 그러면 어떻게 대학을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자가 여러분들에게 묻겠다. “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지만 번거로워서 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라고.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대입의 레이스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노력해야만 그토록 원하던 대학 합격을 쟁취할 수 있다.
점수 여하를 떠나 평소 원했던 대학·학과의 입학담당자에게 전화부터 하자. 그리고 상담을 해라. 점수가 낮아 창피하다고? 이 작은 노력 하나로 합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데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는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대학·학과를 세분화해 분석하는 것도 필수다. 문일고 김혜남 교사는 “단순히 4개 영역 각각 25%씩 고려하는 배치표를 보면서 지원전략을 짜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이라 말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수능영역을 분석하고, 군별 유불리를 살피며, 대학별 환산점수로 수능점수를 재계산하다 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대학·학과가 하나 정도는 나온다.
‘전년도 입시 결과’도 수험생들에게 좋은 자료다. 최근 많은 대학이 전년도 입시 결과를 수험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해당 대학이 내놓는 자료인 만큼 큰 도움이 된다. 원하는 대학의 입시 결과가 없다면 전화로 문의해보자.
이제 정시 원서접수까지 열흘 남짓 남았다. 지금 이 순간의 작은 노력이 여러분의 대학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부디 배치표 하나에 여러분의 인생 전부를 걸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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