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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26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장항준 감독의 첫 천만 돌파 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영월의 유배지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죽음 직전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내용을 그렸다.
영화 ‘왕사남’은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엄흥도가 수습했다’는 역사서의 짤막한 기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1457년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단종)는 강원도 영월의 산골 청령포로 유배된다. 열일곱 살 어린 폐왕의 곁에는 청령포의 민초들과 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어 하는 촌장 엄흥도가 있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나약한 어린 왕이 아니다. 그저 나약한 어린 왕으로 그려졌다면, 관객들은 재미를 잃었을 것이다. 아울러 단종의 죽음이라는 역사가 기록한 비극에만 머물렀다면, 극의 전체적인 흐름도 방향을 잃고 속도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장 감독은 영화의 핵심인 단종 이홍위의 당시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각오로 마지막 삶을 준비해야했는 지 등 디테일한 심리를 분석하며 비극 속에서도 희극과 반전을 삽입하려고 애썼다.
특히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은 처절한 상황이 슬프지만 감정을 다잡고, 무기력하면서도 때론 피폐한 이상의 연기를 소화하며 관객들에게 애틋하면서도 보호해주고 싶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 역할을 맡은 유해진은 살기 위해 모셨던 ‘적객’ 단종에게 연민, 부모로서 느끼는 감정, 폐왕과 정서적 교류를 나누며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함과 유쾌함을 적절히 배합하며 극의 흐름을 이끌었다.
너무 강인함만 보여주는 ‘슈퍼 히어로’에 지친 관객들은 오히려 비극적 역사의 시곗바늘 속에서 보호해주고 싶은 단종에 몰입하며 어린 폐왕과 유배지에서 촌장의 ‘우연한 만남’에 빠져들었다.
영화 ‘왕사남’의 포인트는 어린 왕의 권력의 몰락을 그리기보다, 몰락한 자의 곁을 지키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지키는 존엄에 집중했다.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장소인 유배지에서 폐왕을 진정한 왕으로 존경하며 큰 울림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영화는 액티브한 반전보다 유배지 속 잔잔한 공기와 등장인물들의 긴 호흡으로 최대치의 비극을 이끌어냈다. 침통한 분위기를 잘 표현한 조명과 미장센, 서늘한 음악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한계를 날카롭게 표현하며 긴장감을 유발시켰다.
OTT 시대에 점차 잊혀지던 영화관은 영화 ‘왕사남’으로 모처럼 봄을 맞아 꽃을 피우고 있다. 자책하던 병약한 소년부터 왕의 위엄을 갖춘 대범한 존재로 변모해가는 모습은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고, 유배라는 무거운 역사 위에 왕과 마을 사람들은 계급은 다르지만 서로 끌어주고 위해주는 모습 속에서 그저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보편적 가치도 심어줬다.
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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