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 큰 화제가 됐다. 맨부커상은 세계적 권위를 지닌 문학상이다. 문학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대중의 관심에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세계적인 작가'의 출현을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 되면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수상자를 발표하는 스웨덴으로 향하는 것도 그러한 국민적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무턱대고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기다리기에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 문학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작품이 아직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웃나라들인 중국, 일본과 비교해도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이렇게 우리나라 작가들이 해외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혹자가 말하듯 번역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 속에 구현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가 외국 사람들에게 이해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세계적인 작가가 자라나기 힘든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학교의 문학 수업 현장을 보자. 교사는 칠판 위에 작품의 문체, 갈래, 시점, 형식 등을 빼곡이 적어 내려간다. 학생들은 일제히 칠판을 가득 메운 글씨들을 노트에 베껴 쓰느라 정신이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펜을 쥔 손들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런 수업에서 문학적 감성을 키울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도서관에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문제집을 펼쳐놓고 공부에 열중한다. 바로 옆에 영혼을 살찌워주는 양서들이 가득하지만 잠깐이라도 그쪽으로 눈을 돌리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여유'를 부리기도 힘든 것이 학생들의 고달픈 현실이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성인들 모두가 가진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창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감성을 키워나가야 할 시기의 학생들이 오로지 입시를 위한 문학을 배우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학 이론을 얼마나 암기하느냐에 따라 문학적 소양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작가는 삶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그 경험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립함으로써 태어난다. 그리고 훌륭한 작가들은 대부분 어렸을 적부터 책을 가까이 하며 성장했다. 그러한 점에 비춰 볼 때 아침부터 새벽까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나라 학생들 가운데 미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에 고무된 우리 사회는 냉정히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15명으로 가장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 프랑스는 '바칼로레아(Baccalaureate)'라는 대입 전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논술 형태로 출제되는데 특히 철학 과목에서는 세계와 사회에 대한 응시자의 가치관을 묻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가?'와 같은 논제가 출제되며 이에 대해 응시자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야 하는 시험이다.
이런 시험 문제를 보면 어째서 프랑스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많은 것인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 환상'에 빠진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 이전에 우리 학생들의 문학적 감성을 지켜주기 위한 노력이 우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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