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동일의 작품은 흔히 ‘동심의 회화’로 불린다. 그러나 팔순을 넘어서도 어린 시절의 이미지와 음악, 꽃과 동물을 반복해 불러내는 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에게 동심은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호출하는 미학적 장치이자 기억의 은유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거쳐 프랑스 파리8대학 조형미술과와 파리17공방에서 수학한 그는 1982년 이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해왔다. 오랜 타국 생활 속에서 고향은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음악과 계절, 가족과 사물에 남은 감각의 장소가 되었다.
특히 음악은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프랑스 생활 동안 모은 약 1만5000장의 음반과 악보는 작품의 소재를 넘어 화면의 리듬과 구조가 되었다. 레코드 바늘이 오래된 음악을 되살리듯 그의 붓은 기억의 흔적을 따라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불러낸다.
그래서 박동일은 사물을 그리는 화가라기보다 시간을 지휘하는 화가에 가깝다. 꽃과 나무는 계절을, 새와 나비는 생명의 움직임을, 악기와 레코드는 감정과 시대를 불러낸다. 한국에서의 기억과 프랑스에서 살아온 시간이 서로 다른 선율처럼 한 화면에서 겹쳐진다.
그의 회화에는 현실의 원근법보다 ‘기억의 원근법’이 작동한다. 중요한 기억은 크게 나타나고 희미한 기억은 멀어진다. 그래서 꽃은 사람보다 커지고 레코드는 거대한 원이 되며, 동물과 악기는 현실의 질서를 넘어 자유롭게 만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과거가 현재 속에 축적되는 시간을 ‘지속(durée)’이라 설명했듯, 박동일의 그림에서도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현재 속에서 다시 이미지가 된다. 여기에 꽃이 지고 다시 피어나는 사계절의 순환은 동양적 시간관과도 맞닿는다.
따라서 박동일을 단순히 ‘동심을 그리는 화가’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오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었는가를 묻는다.
그의 수십 년 회화를 하나로 펼쳐놓으면 한국과 프랑스, 개인과 시대, 동심과 노년을 연결하는 하나의 ‘기억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음악은 끝나도 다시 연주될 수 있다. 기억도 그렇다. 박동일은 오늘도 캔버스 위에서 시대의 기억을 연주한다. 박동일 초대전은 속초 피노디아 (남대현 대표)에서 기획하였으며,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이달 12일까지 전시한다.
[ⓒ 대학저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