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주의 목요에세이] 메타버스
이승환
lsh@dhnews.co.kr | 2022-02-10 06:34:5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들의 생활을 많이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조치가 계속되는 바람에 거의 모든 대면 접촉이 2년 넘게 제한을 받고 있어 사회의 많은 분야가 비대면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출근해서 함께 회의하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영상회의나 재택근무로 바뀌었고, 학교도 대면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공연이나 콘서트 같은 문화 예술 분야 산업도 현장에서 같이 즐기지 못하고 컴퓨터 화면을 통한 디지털 공간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메타버스’와 같이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은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VR, AR 기술의 빠른 발전과 함께 5G, 기가인터넷 등 잘 갖춰진 통신 인프라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상공간에 접근이 높아서 메타버스가 영화나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현실화 될 수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1992년 SF소설 <스노우 크래쉬>에 처음 등장 했고 현재 크게 네 유형으로 나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처럼 이용자 개인의 기록을 디지털 세계에 저장하는 ‘라이프로깅(lifeligging)’, ‘포켓몬고’ 게임이나 사진 보정앱 '스노우'처럼 현실 세계와 결합한 정보를 보여주는 ‘증강현실(AR)’, 배달의 민족 앱이나 구글어스 등 현실의 지리적 정보를 시뮬레이션해 보여주는 디지털 트윈 같은 ‘거울세계(mirror worlds)’,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또 다른 공간을 구현하는 ‘가상세계(VR)’까지 모두 메타버스에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메타버스란 말은 잘 몰라도 이미 일상생활 속에 쓰고 있는 익숙한 기술들이라 우리는 메타버스의 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기술 환경은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메티버스는 국적, 성별, 나이, 직업, 거주지역 등을 묻지 않고 선입견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이 가능하다. 그런데 개인 신상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익명성의 공간이므로 일탈의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메타버스는 대면 접촉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비대면의 상호작용이므로 실재감과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낮아져서 상대방의 공포감이나 불쾌함을 일종의 재미로 여겨 더 공격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음란물 게재, 성희롱, 악플, 허위정보, 거짓 리뷰 등의 행위를 해도 메타버스 안에서의 제재는 사용자 계정의 영구 차단 밖에 없다. 다른 정보로 다시 가입하여 새로운 신분으로 계속 일탈행위를 한다면 메타버스의 규칙을 어기는 범죄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용자들이 많아지게 되어 메타버스의 사용 환경은 무법천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 빈부격차 및 정보화 능력 차로 인해 접근 기회가 차단되는 사람들로 인해 불평등이 심해질 수 있다. 메타버스는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접속을 위한 장비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비들의 가격 차가 성능의 차이로 이어진다면 좋은 장비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메타버스 안에서 소외될 수 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소외되어 불평등한 구조의 메타버스 환경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맞는 법과 제도의 정비 또한 신속하게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싶을 때 또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보고 싶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메타버스에 올라 탈 수 있다. 메타버스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기분 전환도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현실 도피 수단이 아니다. 메타버스 속 삶이 아무리 화려해도 현실과 동떨어진 메타버스는 공허하다. 바람직한 메타버스 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현실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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