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주의 목요에세이] 유일무이한 나

이승환

lsh@dhnews.co.kr | 2021-11-11 06:00:00

나는 참 잘 웃는다. 남들보다 더 크게, 그리고 자주 웃어서 눈도 쳐지고 웃을 때면 볼 살에 눈이 덮여 거의 감긴다. 목소리도 커서 결혼 전 중학교에서 근무했을 때에도 종종 옆반 아이들이 “와~ 쟤네들 사회수업이네. 다음은 우리 반인데...”라며 본의 아니게 옆 반 수업을 방해하곤 했다.


그리고 TV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나이 50이 되도록 명품 브랜드도 잘 모르지만 웬만한 TV예능 프로나 다큐는 거의 다 꿰고 있다. 이건 맞벌이 부모를 두었던 탓에 부모님 두 분 모두 잠과 휴식이 더 절실하셨고, 4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신문 맨 뒷면 TV 만화 프로그램 방영시간을 채널별로 샅샅이 외워 공중파 모든 어린이 만화를 매일 다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동생들의 존경과 감탄을 한 몸에 받았던 어린 시절을 보낸 탓 같다.


지금도 이 버릇이 남아 우리 딸들에게 내가 보았던 예능프로들을 다시보기로 보여주려 하지만 애들은 “엄마는 왜 우리한테 자꾸 보라고 강요해? 우린 유튜브가 더 좋아요”라며 지들끼리 핸드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낄낄대며 나를 따돌리곤 한다.


그리고 전업주부 노릇을 어언 20여년간 했어도 아직까지도 주된 식사 메뉴는 참치 김치찌개, 감자 된장찌개, 콩나물국에 김치와 멸치볶음, 김과 같은 밑반찬이 전부이고, 청소도 주로 보이는 데만 청소기를 돌리는 바람에 아주 가끔 서부영화의 사막과 같이 작은 먼지 뭉치가 굴러다니기도 하며, 식구들 흰 양말을 최근 유행하는 외국산 세제를 넣어 오랜 시간 빨아도 널 때 보면 발 뒤꿈치에 거웃거웃한 기운이 남아 빨래도 그리 깨끗하게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식구들에게 미안해서 집안의 개그맨이 되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보상한다. 오죽하면 딸 둘이 모두 엄마한테 기대거나 바라는 것이 거의 없을까.


여기서 문제는 사랑하는 우리 두 딸들에게, 그리고 평생을 의형제와 같은 애증으로 사는 남편에게 나라는 존재는 유일무이한 애미이고 마누라라는 점이다.(아! 남편에게는 아닐 수도 있겠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니 사전적으로 유일무이는 ‘오직 하나뿐이고 둘도 없음’이라는 뜻으로 씌여 있어 능력 부족의 나로서는 내가 이들의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어떨 때는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영어사전 속에서 유일무이가 ‘be unique’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국어사전에서의 유일무이는 구성원들 간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규정되어 있다면 영어사전에서의 유일무이는 오로지 그 자체의 속성이나 특징으로 규정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단보다 개인을 강조하는 동서양 문화 차이 아닐까?


가족 구성원 속의 나는 식구들에게 유일무이한 엄마이자 아내로서 이들에게 미숙한 살림 솜씨와 불완전한 내조로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미안하다. 하지만 나 혼자만 놓고 본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노는데 진심이어서 휴가계획이나 여행계획에서 생각지 못한 계획을 내놓아 나로 인해 항상 가족들이 지루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나만큼 독특할 수 있을까?


그래! 이제부터 나만 보는 거다. 이웃집 아줌마들보다 살림은 못해도, 남편 회사 동료의 마누라처럼 잘나가는 마누라는 아닐 지라도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닌, 누구의 아내로서가 아닌 아무리 부족한 나여도 나는 세상 유일무이한 ‘나’ 일 뿐이다. 자식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남편 앞에서 주눅 들지 말고 이젠 마음껏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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