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인가? 서평인가?
대학저널
webmaster@dhnews.co.kr | 2011-06-08 18:41:05
소설가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 미국상륙 소식이 화제다. 오프라 윈프리의 추천도서로 뽑히는가 하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감동적이다!”, “많이 울었다!”는 독자들의 찬사 또한 이어지고 있어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미 국내에서 백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한국 독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워, 각 온라인 서점에는 많은 리뷰가 올라와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리뷰 대부분이 독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는 것. “책을 읽고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엄마에게 잘 못한 게 생각나, 밤새워 울었다”, “소홀했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는 내용이 줄을 잇고 있다. 독자들의 내밀한 사연을 꺼내게 한 소설의 힘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리뷰가 많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배려한 글이 적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지금 엄마의 사랑이 더욱 그리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옛날 힘든 상황에서 엄마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 오셨을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 어머니께 더욱 잘해야 한다는 결심을 해 본다.”
책에 대한 언급보다는, 책을 읽은 ‘자신’에 대한 고백이 주를 이룬다. 글 종류를 구분하자면 서평이라기보다는 독후감에 가깝다. 쓰는 사람(필자) 위주의 글이 독후감이라면 서평은 읽는 사람(독자) 중심의 글이다. 독후감은 에세이, 서평은 저널리즘 글쓰기라 볼 수 있다. 독후감을 이루는 요소로는 ▲읽은 계기 ▲줄거리 요약 ▲읽은 느낌 및 감상 ▲일화(에피소드)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평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될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좋다. ▲책 내용 ▲저자 소개 ▲집필 배경 및 의도 ▲시대 배경 (문학일 경우) ▲구성 ▲목차 (비문학일 경우) ▲발췌 ▲독자층 ▲판매량 ▲독자 반응 ▲서평자의 관점(평) 등이다. 서평에 이러한 요소가 들어가는 이유는 ‘안 읽은 독자’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서평은 책을 고르는 하나의 구매 기준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저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미디어, 2001)에서 이런 정의를 내린바 있다.
“나의 서평은 취미로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신변잡기적인 내용은 거의 없으며, 오로지 내가 권하는 책의 내용에 관한 정보만을 채워 넣는다.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쓸 데 없는 것은 생략하고, 유효한 정보만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채워 넣는다. 정보의 중심은 그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읽을 가치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것을 가능한 한 요약과 인용을 통해 책 자체로 말하는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목표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여, 서점의 판매대에서 그 책을 발견하였을 때 펼쳐 보도록 하는 데 있다. ”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독후감인가 서평인가? 나만 좋은 글을 쓰는가.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글을 쓰는가. 자문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독후감은 부족한 글. 서평은 뛰어난 글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곤란하다. 형태가 다른 글일 뿐이다. 느낌을 많이 풀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독후감을, 논리적·객관적 글을 쓰고 싶다면 서평을 쓰면 된다. 물론 ‘글을 잘 쓰려면 어떤 연습이 더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서평’이다. 종국의 글쓰기는 ‘독자’를 중심으로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총 네 개의 장과 하나의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각 장마다 시선의 흐름을 주도하는 화자가 교체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각 장의 화자는 ‘너’, ‘그’, ‘당신’으로 바귀면서 ‘엄마’의 존재성을 입체화한다. 작가는 딸을 ‘너’로, 아들을 ‘그’로, 남편을 ‘당신’으로 설정했다. ‘나’라는 친숙한 일인칭 주어를 거부한 채 내가 아닌 타인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를 차용한 작가의 고집은 ‘엄마’와 독자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고 있다. (중략)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로 시작하는 에필로그 <장미 묵주>는 소설의 완성도를 오롯하게 만든 텍스트 연금술의 극치다. 소설을 시작한 ‘너’ 큰딸의 시선은 엄마를 잃어버린 먼 훗날의 시점으로 회귀하여 소설을 끝맺음한다. 미켈란젤로의 명조각상 피에타상 앞에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며 애원하는 큰딸 ‘너’의 마지막 명장면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 손으로 보듬는 모성에 대한 고개숙임이자 찬탄이리라.
대중음악가 이적은 이 소설을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프리뷰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평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모성을 빚진 자식들의 원론적 죄값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단선적 조망은 신경숙 자신의 모든 문학적 역량을 쏟아부어 창조한 경외스런 텍스트에 대한 지엽적 감상의 오류이자 모독이다. 감히 평하건대,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라는 존재로 대변되는 인류 유일무이한 아가페적 사랑에 대한 오마주이자, 온전하면서도 온전치 못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단층 해부한 CT촬영이다.
깊은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문장 곳곳에 작정하고 쓴 흔적이 역력하다. 고결한 주제를 뛰어난 연금술로 완벽하게 창조해낸 텍스트에 별 다섯개는 한없이 적게만 느껴진다. 한국 문단에 신경숙이 있어 행복하다.”
- yes24 ‘다윗’ <엄마를 부탁해>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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