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이 따라 읊던 ‘사모곡’의 숨은 뜻

김현옥

webmaster@dhnews.co.kr | 2010-04-13 12:53:55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아버지 김익겸(1614~1636)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지키다 함락되기 전에 자결하였으니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또한 뱃속의 아기가 아니었다면 지아비를 따라 생을 마감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조선의 법도였다.


아버지를 닮아 명석했던 김만중은 현종 6년에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암행어사, 동부승지 등으로 관직에 진출한다. 하지만 1674년 인선왕후 작고 시 자의대비 복상문제로 서인이 패하면서 관직을 삭탈당한다. 다시 복직했다 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서포는 김수항 상소 건으로 선천에 유배되는 굴곡을 겪는다. 1688년 유배가 풀렸으나 탄핵으로 남해에 유배된 후 그곳에서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구운몽>(민음사)은 선천 혹은 남해에서 썼다고 전해지는데 어디에서 지었든 김만중이 홀어머니를 위해 한글로 쓴 소설이다.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을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썼을 구운몽은 ‘시로 지은 소설’로 불릴 만큼 문장이 아름답다. 그 중 주인공 양생이 과거를 보러가다가 어여쁜 처자에 마음을 빼앗겨 읊은 시 ‘양류사’(楊柳詞)를 한번 감상해보자.
“버들이 푸르러 베를 짜는 듯하니, 긴 가지 그림 속 누각에 떨쳤도다/원컨대 그대는 부지런히 심어라, 이 나무 가장 풍류로우니라/버들이 자못 푸르고 푸르나니, 긴 가지 빛난 기둥에 떨쳤도다/원컨대 그대는 부질없이 꺾지 마라, 이 나무 가장 정이 많으니라.”(楊柳靑如織 長條拂畵樓 願君勤栽植 此樹最風流 楊柳何靑靑 長條拂綺楹 願君莫漫折 此樹最多情)
과거를 보러 가는 것인지, 아낙네 후리러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절망 속에서도 비탄에 빠지지 않고 삶을 관조하는 모습에서 서포의 큰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다. 남해 시인 고두현은 시집 <늦게 온 소포>(민음사)에서 어머니를 향한 서포의 애절한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물살 센 노량 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윤삼월 젖은 흙길을/수레로 천 리 뱃길 시오 리/....../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화전을 만들고 밤에는/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남해 가는 길-유배시첩.1’)
앵강은 김만중이 만년에 유배 살던 남해 노도(櫓島) 앞바다의 이름이다. 불의에 맞서는 데서 오는 고통은 감내할 수 있지만,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그저 안쓰럽고 애가 끓는다.
“강화 바다를 생각한다./아버님은 왜/스물한 살 꽃다운 해평 윤씨/만삭의 아내를 두고 순절을 택했을까./....../나부끼는 패장의 깃발 등에 꽂고/절망뿐인 눈물 붉게 흘렸을 아버님/......//지아비 잃고 바다 위에 떠/돛폭처럼 울부짖다/어머님 날 낳으니/유복자, 아버지 얼굴 모르는 것으로/평생 가슴에 돌 얹고 살았더니/다시 열린 세상 잔물결 위로/소리 없이 내리는 눈/조각배 위에서 태어나 유배의 섬에 와 갇힌/나를 보러/아버님이 이렇게 오시는가.(‘적소에 내리는 눈-유배시첩.4’)
그러니 커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하고,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은 더욱 애절한 뿐이다.
“빗방울 굵어지는 소리 듣다 잠깐 자리에 들었더니 옥당의 서책 빌려다 놓고 필사본 엮고 계신 어머님, 돌아앉은 뒷모습이 구름 같아라. 평생 검은 옷 갇혀 너희는 남과 같지 않으니 배움에 한층 깊어야 한다. 곤궁한 들판에 짧은 곡식 얻고 나면 논어 맹자 중용 먼저 바꾸고 손수 짠 명주를 팔아 춘추좌씨전을 사던 날 손 끝에 피멍 맺혀 밤새 잠들지 못하더니, 저 건너 사람의 마을 불빛 꺼지고 자애로운 무릎에 앉아 당시(唐詩)를 배우던 어린 날 철없이 따라 읊던 사모곡 숨은 뜻이 이토록 아프구나. 나이들 때까지 가르치는 이 따로 없어 오직 한 분 스승이었던 어머님,”(‘꿈에 본 어머님-유배시첩.5’)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끝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마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것은 추운 날 데워 놓은 아랫목이거나, 고향 떠날 때 바리바리 쌓아주는 보따리이거나, 자기 전에 밤하늘을 향해 합장하는 따뜻한 숨결과도 같은 것이리라.
<김현옥 기자 fargo3@d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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