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거리사진전 문래동서 개최
대학저널
webmaster@dhnews.co.kr | 2025-04-11 17:20:05
다양한 작품에서 소개된 만큼 그는 콕 집기 어려울 만큼 피사체가 되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런 그가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를 들었다. 무계획으로 떠났던 아프리카 여행,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그는 카메라를 만났고 아버지를 만났고 답이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질문으로 가득했던 자신을 만났다.
이정수 작가는 여행을 계속했다. 쿠바, 이집트, 멕시코, 캄보디아, 베트남, 오만, 홍콩. 여행지로 대중적인 곳, 아닌 곳 가리지 않고 발도장을 찍었지만, 그의 시선은 미슐랭이나 인생샷 스팟에 있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며 사진 속 사람들은 작가에게 질문받은 사람들이다. 나는 누구냐고, 삶은 무엇이냐고 작가는 사진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누구도 누구의 사진에도 정답이 적혀 있지는 않았다.
우문현답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질문하는 자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그 현명한 답은 답의 형태가 아닌 질문의 형태를 띄게 마련이다. 질문하는 자에게 왜 질문하는가? 원하는 답은 감춘 채로, 스스로를 속인 채로 하는 질문은 아닌가? 답을 준다면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는가? 되묻는 것이 현답이다. 그래서 우문현답은 우문에 현문이다.
작가는 여전히 이렇다할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질문하는 자신만큼은 발견했다. 마치 모든 것을 부정해도 의심하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던 데카르트의 깨달음처럼. 그가 사진을 번듯한 갤러리에, 거창한 전시에 출품하지 않고 거리에 내놓는 이유다. 자신이 가진 것은 답이 아니라 여전히 질문이기에, 사람들이 올려다보기엔 민망한 시선이다. 다만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질문으로만 가득찬 자신에 실망하지 않는, 길 위에 있기에 길을 잃을 자격이 있는 것이라는, 그렇게 스스로를 용서하며 세상과 다시 어울릴 수 있게 하는 자리라면, 그는 기꺼이 내밀한 사진을 사람들 앞에 내어 놓는다. 문래인 이유도 간단하다. 문래는 그가 자기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작가 이정수는 자신의 질문을 자신이 사는 곳에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이제는 분장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서가 아니라,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작업실 근처를 걷듯, 그의 사진이 한동안 문래동을 산책할 뿐이다.
한편, 전시 안내와 도슨트 예약은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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