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은 물론 대학생 직장인도 의대 준비한다

의대 블랙홀 빠진 대한민국

조영훈

aaajoyh@gmail.com | 2023-06-21 09:58:24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의 간판. 

 

[대학저널 조영훈 기자]

지난해 서울대 자퇴생 238명.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과 포스텍을 자퇴한 학생은 지난 5년간 1105명. 올해 서울대 신입생의 6.2%에 달하는 225명 휴학. 이중 다수는 의학 계열 입시를 위해 다시 수능을 준비한다는 게 입시 전문가의 분석이다. 자연계열 우수학생을 모조리 빨아드리고 있다 해서 이른바 ‘의대 블랙홀’이란 단어도 나왔다.

 

“전국에서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는?” 과학고나 자사고을 생각했다면 시작부터 답에서 멀어졌다. 정답은 ‘서울대’라고 한다. 서울대에 재수나 반수로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의미에서 나온 우스갯소리겠지만,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의대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대 자연계열의 한 교수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서울대 자연대가 의대 배출 1위라고 자조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중도에 그만둔 학생은 238명이고 올해 신입 휴학생은 225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80% 이상이 이공계 학생으로 대부분 의대로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게 학원가의 분석이다.

 

입시전문기관에서 초·중학생 학부모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의대쏠림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지난달 21일 종로학원이 초등학생 학부모 676명과 중학생 학부모 719명 등 1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진로에 대해 88.2%가 이과를 선호하며, 그 중 의학계열이 전공 선호도 1위로 꼽혔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방 의대가 지역 출신 고교생을 뽑는 지역인재 전형이 확대되며 대치동 등 일부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초등 의대반’이 지방까지 번진 상황”이라며 “의대 정원 증가는 이런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의학계열 선호현상은 직장인들 사이에도 불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도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46세 22학번 의대생’의 사연은 유튜브 등에서 연일 화제였다. 그는 서울대에 1997년 입학해 졸업 후 17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3수 끝에 의대에 합격했다.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 딸을 생각하면 ‘정년없는 전문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55세에 한의대에 합격’ 자막 영상도 인기다. 주인공은 지난 1985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해 졸업후 증권사를 다니다 2년간의 준비 끝에 한의대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실제 의학계열의 성인 입학자수도 급증했다. 종로학원이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대학교 의약계열의 26세 이상 성인 입학자는 2017년 130명에서 지난해 582명으로 4.5배 늘었다. ‘대한민국 학원 1번가’ 서울 대치동의 한 재수학원 입시컨설팅 관계자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최근 안정적인 곳에 종사하는 직장인임에도 의대 입시반 등록 문의를 하러 오는 경우가 여럿 있다"고 귀띔했다.

 

의학계열 합격선 고공행진

실제 대입 합격선에서도 의학계열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종로학원이 최근 대입정보포털 ‘어디가’에 공개된 최근 3년간(2020~2022학년도) 정시 입시 결과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전국 의대와 치대, 한의대, 수의대의 최종등록자 중 상위 70%에 해당하는 합격생의 국어·수학·탐구영역 백분위 평균은 상승했다. 반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SKY’ 대학의 합격선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점수를 보인 의대의 경우 2020학년 97.4, 2021학년 97.4, 2022학년 97.9로 상승했다. 가장 상승폭이 컸던 한의대는 2020학년 95.4, 2021학년 96.8, 2022학년 97.2로 형성됐다. 치대는 학년도 순으로 96.2, 96.6, 97.0 추이며, 수의대는 94.9, 95.0, 95.2로 상승했다. 약대는 학부 선발 첫해인 2022학년도 95.0으로 나타났다.

 

2022학년에는 약대의 학부 선발 전환으로 전국 37개 대학에서 1743명을 모집해 자연계 우수 학생이 분산돼 메디컬 전문직의 합격선 하락이 예상됐으나, 의학계열 합격선은 오히려 상승한 것이다.

 

반면 의대를 제외한 자연계열 합격선은 낮아지는 추세다. 2022학년도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의 자연계열 평균 합격선은 94.4으로 3년 전인 2020학년도 95.0보다 하락했다. SKY 대학의 자연계열 평균 합격선과 전국 의대 합격선 격차는 2020학년도 2.5점에서 2022학년도 3.5점까지 벌어졌다.

 

의학계열 쏠림으로 고급인재들이 유출되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한 사립대 자연계열 교수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최근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중·고교 시절 관련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한 학생이 있었는데, 의대생이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무분별한 의대 열풍이 고급 인재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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