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통폐합, '약'될까 '독'될까
글로컬대 선정을 위한 형식적 통폐합 오히려 비효율
섬세함 필요
조영훈
aaajoyh@gmail.com | 2023-06-16 09:54:19
[대학저널 조영훈 기자]
선정만 되면 1000억씩 지원하는 정부의 글로컬30 사업. 혁신성을 위주로 뽑는다는 정부의 방침에 학령인구 감소로 궁지에 몰린 각 지방 대학들은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공개한 추진방안 문서에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통합을 꼽아, 각 대학들은 대학 간 통합을 히든카드로 꺼내 들고 있다. 하지만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통합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스승님의 소통 점수는 F입니다"
지난달 15일 스승의 날 충남대학교 대학본부 앞에 피켓이 들렸다. 올해 처음으로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던 날, 학생들이 땡볕 더위 아래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 내용은 한밭대와 통합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부산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역시 부산대학교와 통합을 반대하는 부산교대 학생들이 나섰다.
대학들이 우후죽순 통합에 나선 것은 정부가 실시하는 ‘글로컬30’ 사업이 촉매가 됐다. 글로컬30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위기에 처한 지방 소재 대학 중 30곳을 선정해 5년간 연 200억원씩 1000억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선정 기준으로 혁신을 내걸었다. 정부가 공개한 추진방안 문서를 보면 혁신성이 1단계 평가 점수에서 60%로 배정됐다. 그 중에서도 정부는 학과 간, 대학 간, 산업 간 벽을 허물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산업 기반이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지방에서는 꺼낼 수 있는 카드로 사실상 대학 간 통합뿐이었다. 실제로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방의 경우 (정부가 말한) 혁신자원으로 대학이 유일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비수도권 국공립대 최소 20곳에서 대학 간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강원권에서는 강원대-강릉원주대 ▲충청권에서는 충남대-한밭대 ▲영남권에서는 안동대-경북도립대-금오공대, 영남대-영남이공대, 계명대-계명문화대, 부산대-부산교대, 국립경상대-창원대, 거창대-남해대 ▲호남권에서는 전남도립대-목포대-순천대 등이 통합을 논의 중이다.
각 대학들이 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에 파열음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구성원을 설득하지 못한 채 진행되는 등 졸속으로 통합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대와 부산교대, 충남대와 한밭대 등에서는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4월 충남대와 한밭대 교수들은 각각 통합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거창대-남해대 간 통합 논의에서도 지역 의회와 주민들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광역자치단체장이 일방적으로 통합 구조조정을 시도해 갈등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경남도지사가 일방적으로 창원대-국립경상대 간의 통합을 거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창원대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창원 공단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통합 논의는 갑작스럽다는 입장이다.
최종 목적은 ‘경쟁력 갖추기’
이에 혁신을 위한 혁신으로만 접근하게 되면 통합은 그저 사업 따내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지적이 많다. 본질적 의미로 돌아가 최종적으로 경쟁력이 높아지는 혁신이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확정안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최종 비전으로 삼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충청권 소재 한 사립대 총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글로컬대학에 뽑히기 위해 통합과 학과 통폐합 등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보니, 선정돼도 탈락해도 후폭풍이 클 것”이라고도 밝힌 바 있다.
형식적 통합은 오히려 비효율을 가져올 수도
대학의 규모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형식적인 통합은 오히려 비효율을 발생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교대 오범호 교수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대학들은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누리고 있으나 규모, 학문 분야, 유형, 지리적 여건, 등록금 의존도 등 대학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규모 확장은 오히려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단순히 지역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진행하는 형식적인 통폐합은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 다른 학제를 가진 학교들이 통합됐을 때 그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고 연구 결과는 설명한다. 연구에 따르면 학부 교육과 대학원 교육, 연구를 동시에 생산함으로써 ‘상호보완 효과’가 발생했다. 이는 기존 학부 교육 중심 대학, 대학원 중심 대학, 연구 중심 대학 등 서로 다른 학제 제도로 운영되던 학교들이 통합됐을 때, 비용상 이점이 있을 것으로 오범호 교수는 추정했다.
다양한 학제뿐 아니라 ‘다채로운 학과’가 설치된 것도 경쟁력 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빠른 산업변화로 융합교육, 곧 다영역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인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 학교에 다양한 전공이 있다는 점은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통합 바람이 분 프랑스
한국보다 대학 통합 바람이 먼저 불었던 곳으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체적으로 평가한 연구 성과에 비해 지속적으로 세계대학평가에서 밀려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국제 경쟁이 심화되자 대학도 그에 맞춰 그 기준에 변화해야 한다는 프랑스 내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변화를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학 통합이었다. 프랑스는 일반대학과 그랑제꼴(우수 학생만 따로 선별해 소수정예로 교육하는 프랑스 고등교육 제도), 연구기관의 삼자체제 모델의 비효율성을 제기하며 기존의 기관들을 통합해 경쟁력을 높이는 개혁을 지난 2016년부터 시작했다.
대학 통합과 관련된 주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인하대 연구팀은 프랑스 소르본 대학을 가장 대표적인 통합 사례로 꼽았다. 인문학 중심의 파리 4대학과 자연과학 및 의학 중심의 파리 6대학 간 상호보완적 통합으로 설립된 대학다. 학과 범위를 넓혀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소르본 대학은 최근 QS 세계대학랭킹 60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파리문리대학교(PSL)도 가장 성공적인 연합 사례 중 하나로 분석했다. 파리문리대학은 국립대(파리 도핀대학), 그랑제꼴(파리국립고등연극예술원, 국립고문서학교, 파리국립고등화학학교, 파리국립고등광업학교, 고등사범학교, 고등연구실습원, 파리 고등산업물리·화학학교, 파리천문대), 연구소(파리생물·생물물리학연구소), 콜레주 드 프랑스 등이 11개 기관이 연합된 대학연합체다.
기존 소수정예로 운영되던 그랑제꼴이 합쳐져 규모의 이익을 누리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기관이 연합돼 그 경제성과 경쟁력이 개선됐다는 평가다. 파리문리대학은 현재 QS 26위에 랭킹됐다.
그 밖에도 프랑스 대학들은 대학끼리뿐 아닌 대학원, 연구소, 의료기관 등과의 통합과 연합을 진행한 바 있다.
섬세한 고민 필요해
“통합의 필요성, 통합대학의 비전이나 장단점, 통합 내용 등 그 어느 하나도 명시하지 않았다”
지난 4월 3일 충남대와 통합을 반대하는 한밭대 교수회 입장문의 일부다. 3주가 지나 발표된 2차 입장문에도 비슷한 입장은 여전히 유지된다. “통합과 관련한 주요 ‘원칙’에 대해 협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다.” 세심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 재정학을 연구하는 서울교대 오범호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한다.
오 교수는 "단순히 통합 여부 자체에 대한 초점보다는 통합 이후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조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업 선정을 위해 (명목상의) 통합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통합과정에서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은 불가피하며, 통합 이후에도 기능이나 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이 발생하는 등 통합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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